History
홍익금속조형회의 역사
금속을 매개로 하는 창작이란 무엇일까. 홍익금속조형회(이하 홍금회)의 시작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였다. 홍금회는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현재 금속조형디자인)1) 최현칠 교수를 주축으로 1980년 창립한 동문회로 현재까지 41년 동안 총 38회의 정기 전시를 이어오며 100여 명이 넘는 회원이 구성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홍금회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전시는 12명의 창립 멤버로 시작했으며, 2015년까지 매년, 2017년부터는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다. 이밖에 해외 교류, 장학사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연대하며 역사와 전통을 가진 협회로 운영되고 있다.
1) 1960년 창설
명칭 변화
1980 홍익금속공예가회 → 1997 홍익금속조형작가회 → 2019 홍익금속조형회
로고 변화
1981 — 1991
1992 — 현재
1980년대 : 전통과 세계화의 공존
'홍익금속조형회(이하 홍금회)'는 1980년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 최현칠 교수의 주도로 '홍익금속공예가회'를 결성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초대회장이자 창립을 주도한 최현칠 명예교수는 "홍익대학교 금속공예과를 졸업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2)들을 모아 공예가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현실과 인식을 개선"하고자 홍금회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창립전은 통인화랑에서 개최되었으며 회원들의 작품들은 주물기법을 활용한 작품이 다수였다.3)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보석 모양의 로고를 만들고 전시에 '홍익금속공예전'이라고 명명해 조직으로서 모양새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홍금회 전시의 주요 특징은 '촛대(1981년)', '소리(1982년)', '12월의 축제(1983년)'처럼 같은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고 이를 전시로 이어나갔다. 초기에는 주물기법을 활용했으며, 작품의 주제나 형태에서 전통적 요소가 많이 관찰되나 점차 새로운 기법을 탐구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1980년대 불어온 중요한 변화의 기점은 1988년 미국과의 교류전으로 개최된 <88현대금속공예전>3)을 들 수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개최 등 세계화의 흐름을 일찍이 느낀 회원들은 미국의 작가 24명을 초대해 교류전의 형식으로 전시를 개최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전통적인 형태에서 탈피해 추상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 포스터 모더니즘적 경향이 관찰되며 전통과 세계화의 흐름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창립멤버는 총 12인으로 고승관, 남경숙, 박호성, 박인철, 변견호, 오영민, 오융경, 오원택, 임옥수, 최정자, 최현칠, 홍경희 회원이다.
3) 1970년대 후반부터 최현칠 교수는 금속공예 재료와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전문 기관인 '국립공업연구소'에서 교육과 자문을 받았으며, 이러한 노력과 교류를 통해 홍익대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비교적 기기나 기법 도입이 빠른 편이었다.
4) 1988년 6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 워커힐미술관에서 한미교류전으로 진행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 금속공예가 60여 명이 참여했으며 미국 내 18개 대학의 금속공예과 교수 앨머 카이커만, 마릴린 실버 등 24명과 국내 참여 작가로 최현칠, 오영민, 홍경희 회원 등 42명이 출품했으며, 금속공예로는 첫 공식 교류전이다(조선일보, "韓美교류展 출품 來韓 美 금속공예가 펜스터씨", 1988. 7. 2 (검색일: 2021. 8. 13)
1990년대 : 도약적 금속조형운동의 실천
제13회 홍익금속공예전(미국 아이오와) - 한국현대금속공예의 오늘, 1992.
미국 방문 중인 회원들의 모습, 1992.
1990년대를 맞은 홍금회는 21세기를 미리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나온 1980년대를 "21세기의 이상적 조형미를 향한 1단계로서 발전적 기틀을 확립한 시기"로 정의하고, 맞이하는 1990년대를 "2000년대로의 도약적 금속조형운동을 위한 2단계"로 설정했다.5) 해외 교류의 경험을 반추해 다시 정체성을 고민한 시기로 '한국인의 미의식이 반영된 현대공예의 발전'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다. 대형 전시가 많이 치뤘던 1990년대는 <한국 현대금속공예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한국과 미국 2개 지역(아이오와, 메릴랜드)에서 전시를 개최했고, 1999년에는 20주년을 기념해 <99서울국제금속조형작가초대전>을 개최했으며 총 10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감상을 위한 조형성이 강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다면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실용성을 탐구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가구나 조명처럼 작품의 크기가 커지고 다양한 용도를 가진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는 우리나라 주거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고 주거 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는 동시대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5) 홍익금속조형가회, <제11회 홍익금속조형전>도록, 1990. 03.
2000년대 : 대중성과 시도
2000년대에는 "기본과 변용, 원칙과 가변성 그리고 전통과 새로움"6)이라는 기조 아래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들이 진행되었다. <생활금속공예판매전>(2001),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특별전 '선물'展(2004)을 통해 판매를 염두해 창작한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이는 단순히 창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대중들이 많이 구입할 수 있는 장신구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는데 기존의 상업 주얼리와는 다른 아트 주얼리를 표방해 차별성을 두었고, 작품의 세공 기술도 발전하였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과 협업해 작품성과 산업성을 접목한 문화상품의 개발을 진행해 문화상품에 대한 의식변화와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는 창작의 매체를 금속으로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비금속 소재와 여러 소재를 혼합하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6) 이 기조는 2003, 2004, 2006, 2007년의 전시 도록에서 약간의 문장의 변화는 있지만, 반복적으로 계속 언급되며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2010년대 : 작가의 세계관과 개성의 존중
2015년까지 매년 개최했던 전시를 격년제로 정비하고 2019년에 '홍익금속조형회'로 개칭해 현재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기존의 회원들이 교육과 창작 등 각 분야에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작가 개인의 세계관과 뚜렷한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시가 개최되었다. 이러한 2010년대의 경향성은 ''나는-'展7)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작가 자신을 투영하는 표현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는 구성원들의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협회의 장점을 드러내고 다양한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2010년대 후반에 개최된 'Technique(2017)', '시선(2019)' 같은 주제는 특히 작가의 개성과 세계관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전시 방향이 조율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대의 작품의 특징은 디지털 가공기술과 전통적인 공예 기술이 접목되고 신소재를 과감하게 사용해 표현과 창작의 한계를 두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7) 2015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전시로 주로 작품을 소개하던 기존의 전시와는 다르게 작가와 작품을 함께 연출한 사진을 촬영해 도록을 제작했으며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 참신한 기획을 시도하였다.
역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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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창립전《홍익금속공예전》
1980.09.29~10.05 — 12인 참여, 회장(최현칠) — 통인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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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제2회《홍익금속공예전》
1981.12.01~12.06 — 주제(촛대), 22인 참여, 회장(최현칠) — 신세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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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제3회《홍익금속공예전》
1982.11.25.~12.01 — 주제(소리), 18인 참여, 회장(최현칠) — 동덕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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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제4회《홍익금속공예전》
1983.12.13~12.18 — 주제(12월의 축제), 19인 참여, 회장(최현칠) — 신세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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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제5회《홍익금속공예전》
1984.10.29~11.03 — 26인 참여, 회장(오융경) — 홍익대학교 박물관
1984.11.07~11.13 — 24인 참여, 회장(오융경) — 충남대전, 반도화랑 -
1985
제6회《홍익금속공예전》
1985.12.12~12.17 — 24인 참여 회장(고승관) — 동방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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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제7회《홍익금속공예전》
1986.09.01~09.06 — 38인 참여, 회장(최정자) — 홍익대학교 박물관
1986.10.22~10.27 — 38인 참여, 회장(최정자) — 대구 동아쇼핑센터미술관 -
1987
제8회《홍익금속공예전》
1987.04.14~04.19 — 주제(혼례), 37인 참여, 회장(임옥수) — 신세계미술관
1987.06.05~06.11 — 주제(혼례), 37인 참여, 회장(임옥수) — 전남광주가든미술관 -
1988
제9회《홍익금속공예전》
(한미교류전)1988.06.10~07.10 — 한국 42인 참여, 미국 24인 참여 — 워커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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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제10회《홍익금속-10년》
1989.04.11.~04.19 — 57인 참여 — 현대미술관(무역센터현대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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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제11회《홍익금속공예전》
1990.03.02~03.31 — 59인 참여 — 현대미술관(무역센터현대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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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제12회《홍익금속공예전》
1991.04.24~04.30 — 59인 참여 — 갤러리아 미술관(갤러리아 백화점 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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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제13회《홍익금속공예전 - 한국 현대금속공예의 오늘》
1992.05.25~05.31 — 78인 참여 — 갤러리아 미술관(서울)
1992.07.01~07.15 —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예술박물관(아이오와, 미국)
1993.01.25~02.12 — 몽고메리대학 미술관(메릴렌드, 미국) -
1993
제14회《홍익금속공예가회 - 장학기금 모금을 위한 특별전》
1993.10.08~10.14 — 93인 참여 — 갤러리아백화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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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제15회《홍익금속공예전》
1994.09.26~09.31 — 60인 참여 — 원광대학교 박물관 전시실
1994.10.05~10.12 — 공주문예회관1994.10.21~10.26 — 갤러리아 미술관 -
1995
제16회《홍익금속공예전》
1995.07.10~08.10 — 62인 참여 — 워커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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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제17회《홍익금속공예전》
1996.11.07~11.12 — 62인 참여 — 대구동아쇼핑센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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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제18회《홍익금속공예전 - 21세기를 향한 홍익금속 위상전》
1997.05.29~06.07 — 65인 참여, 회장(오원택) — 포스코센터(다목적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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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제19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1998.09.08~09.12 — 70인 참여, 회장(고승관)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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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제20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 20주년 기념 - 99 서울국제금속조형작가초대전》
1999.11.29.~12.06 — 109인 참여, 회장(고승관) —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제3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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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제21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12 Day's Journey of Aesthetic》
2000.08.23~09.03 — 78인 참여, 회장(홍경희) — 이타미 공예센터(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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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제22회《홍익금속작가회 - Life + MetalCraft 생활 금속 공예 판매전》
2001.09.04~09.10 — 56인 참여 — 삼성플라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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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제23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2.12.18~12.24 — 주제(선물), 55인 참여, 회장(이충우) — 인사동 경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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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제24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3.10.29~11.04 — 60인 참여 —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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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제25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4.11.24~11.30 — 62인 참여, 회장(이성근) — 백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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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26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6.10.27~11.02 — 67인 참여, 회장(김종승) — 가인로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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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제27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7.08.15~08.21 — 64인 참여, 회장(김종승) — 갤러리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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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제28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8.09.09~09.21 — 71인 참여, 회장(최태현)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상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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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제29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09.06.03~06.09 — 71인 참여, 회장(최태현) — 갤러리 이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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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제30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0.11.09~11.19 — 주제(경계에서), 85인 참여, 회장(정영관) —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H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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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31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1.05.11~05.16 — 72인 참여, 회장(정영관) — 동덕아트갤러리 A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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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2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2.09.12~09.18 — 주제(실용과 오브제, 57인 참여, 회장(조유진) — 동덕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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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제33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3.10.02~10.08 — 55인 참여 회장(조유진) — 동덕아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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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34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4.10.24~10.30 — 주제(패), 60인 참여, 회장(이명주) — 갤러리 보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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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35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5.11.04.~11.10 — 주제(나는~), 57인 참여, 회장(이명주) — 홍익대학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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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36회《홍익금속조형작가회전》
2017.11.22~11.27 — 주제(Technique), 54인 참여, 회장(고보형) — KCDF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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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37회《홍익금속조형회전》
2019.03.27~04.01 — 주제(시선), 38인 참여, 회장(임경수) — 갤러리 이앙
[홍익금속조형작가회]에서 [홍익금속조형회]로 명칭 변경 -
2021
제38회《홍익금속조형회전》
2021.12.01~12.12 — 주제(기록과 모색), 51인 참여, 회장(김정지) — 온라인 전시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홍익금속조형회 홈페이지와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
Congrats
홍익금속조형회 창립 40주년 축하의 글
변건호 /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 한국조형디자인학회 명예이사장
차갑게 짙어가던 붉은 단풍도 하나둘 떨어지는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입니다. 특히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세계 인류를 대재앙으로 몰고 온 코로나 바이러스 정국은 아직 끝날 줄을 모릅니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고통으로 흔들고 있는 가운데 홍익금속조형회(이하 홍금회)가 어느덧 4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홍금회는 매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는 작품 연구와 발표를 통해 대한민국의 공예조형디자인의 역사를 선도해 왔습니다. 1970년대 중 후반에 걸쳐 홍금회의 발족을 위해 신권희, 최현칠, 고승관, 임옥수 교수님 등과 함께 전시계획을 토의하며 가슴 뛰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만, 벌써 반백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창작 의지는 아직도 열정과 의욕으로 한층 달구어져 있습니다.
홍금회의 연구와 발표는 다양한 공통 주제와 저마다의 기능성, 조형성, 창의성 등 실험정신을 끊임없이 연마하여 각자의 기량과 역량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보람과 긍지를 함께 누려왔습니다.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데 사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홍금회의 창작 정신은 오늘도 변함없이 굳건하고 날 선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간 홍금회를 이끌어가고 함께했던 선배, 동문, 후배님들 중에서도 작고하신 신권희 교수님, 오융경 교수님과 이숙미 님, 이영준 님, 김선득 님, 김미현 님, 정영관 님 여러 후배님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작품에 담긴 지혜와 정신을 또 함께 나누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앞으로도 홍익금속조형회가 지속적인 탐구 정신과 문화예술창달에 큰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려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김정지 / 2020—2021회기 회장
홍익금속조형회 선후배 동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하는 법>의 저자 이은형 교수는 “지금의 40대, 즉 X세대는 선배 세대와 몸을 같이 하면서도 마음은 후배 세대와 닮았다”고 한 바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회장직을 맡아 40주년 기념 자료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면서 X세대인 제 소임은 일종의 세대간 브릿지,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 근현대 공예사의 중심축이며 후학 양성을 이끌어 나가셨던 선배 동문님들의 자료들을 제대로 정리했다고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홍익금속조형회라는 큰 울타리를 통하여 우리 40년 역사를 조금이나마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비록 동문회의 결속과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퇴색되고 새로운 세대의 활발한 영입과 활동이 아쉬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든 작품들은, 어떤 의미로든 예전 작품의 되풀이인 동시에 다음 작품의 선구(先驅)가 되는 역할을 한다고 믿습니다. 윌리엄 모리스의 말대로 “과거는 죽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며 우리가 현재 만들어 나가고자 노력하는 미래 속에 생존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홍익금속조형회 회원 여러분, 선후배 동문 여러분, 그리고 기념사업 진행 실무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운영진과 동문의 특별한 애정으로 참여해 주신 이정은 기획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년 11월
Commentary
홍익금속조형회 40년의 성취와 새로운 과제
이재언 / 미술평론가
강원대 졸, 홍대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주)선갤러리 디렉터 역임
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2015 평창비엔날레 예술감독 역임
도시미학 대표 역임
인천아트플랫폼 관장 역임
관련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쇠붙이 소비량이 압도적 1위인 나라이다. 한 사람이 연간 소비하는 철의 양이 무려 1톤이 넘는다. 중공업이 발달한 그 어떤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쇠붙이 소비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은 하드파워가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쇠붙이에 관한 한 자신감을 가지고 참 잘 다루는 민족이란 생각이 절로 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고대로부터 금동 가공, 야금 등의 기술이 발달해 있었기에, 금속활자, 철갑 거북선 등이 어렵지 않게 창조될 수 있었다. 게다가 쇠젓가락과 유기를 쓰는 생활양식들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단기간 내에 산업의 구조와 체질을 수공업에서 중공업 위주로 도약시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쇠붙이에 대해 정서적으로 친근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된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등에 고루 균형적으로 활용해 왔기에 가능할 일이리라.
쇠붙이에 관한 것이라면 공업적 하드 메탈에서부터 조형적 소프트 메탈까지 두루 강점을 보이는 것이 우리다. 현대조각에서 쇠붙이를 쓰는 빈도가 갑자기 많아졌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조각에는 조소와 소조, 두 가지로 분류된다고 배웠으나 오늘날 조각이나 소조는 급격히 쇠퇴하고 거의 판금조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한 양상이 기존의 금속공예 혹은 금속조형과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고, 금속조형의 확장성이 논리적으로나 현상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80년대부터 본격화된 공예 영역에서의 금속조형이 오늘의 현대조각과 상당한 관련성을 맺고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조각가(들이)가 금속공예가들의 작업실을 왕래하면서 여러 가지 노하우를 벤치마킹했던 것은 흔한 일이었다.
오늘의 금속조형디자인이 보여준 빛나는 성취를 말할 때 '홍익금속조형회'(이하 홍금회)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학교 학연 중심의 활동은 우리 문화계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금회의 존재는 각별하다. 워낙 다양한 회원들의 집단을 일반화시켜 말하기는 쉽지 않으나, 뚜렷한 학풍과 성격을 지니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상이다. 각각의 작가들을 살펴보면 어떤 양식이나 트렌드 등이 각양각색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멤버가 탄탄한 기량의 토대 위에 개성을 존중하고 개방과 실험에 거침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달리 표현하면 '끼'를 비교적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스쿨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순수 조형의 측면에서나 디자인의 측면에서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홍금회 특유의 학풍이 어디서 왔을까. 이런 물음에 직면해 지난 80년대부터 '끼'로 충만했던 1세대 메탈 아티스트들의 역할이 워낙 인상 깊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돈키호테 같은 열정의 레전드들이 남긴 유산이 지금도 남아 있음이다. 다소 거칠고 투박해도 스케일과 뜨거운 열정, 번득이는 영감 등에서 타 장르에도 그 특유의 임팩트와 파급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보수적인 공예계의 거센 반발이나 질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적 공예와 혁신적 조형 사이의 갈등은 옳고 그름이나 가치의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미래는 차치하고라도 조형계가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스텍펙트럼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말이다. 결국,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변화 시도들은 홍금회의 학풍을 진취적으로 조성하며, 금속공예를 좀 더 확장성의 영역으로 진입시키는 데 기여를 한 것으로 판명된다. 발전적 비전을 자연스럽게 후학들에게 빛나는 유산으로 남겨준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환경 속에서 다수의 해외 유학파 후학들이 개성적이면서도 기발한 조형의 성취를 접목시킴으로써 그야말로 홍금회는 금속조형과 디자인 영역에서 창조의 화수분과 같은 역할을 해온 것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부터 세계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질서로 돌입해 갔다. 디지털, IT, 가상현실, 메타버스 등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맞이해 예술계에서도 대응에 부심했으며, 금속조형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통적 개념의 수공적 모드가 일반 시민들의 생활예술로 꽃을 피웠다면 혁신적인 성향의 조형계는 폭넓은 확장성을 추구하게 된다. 홍금회 회원의 작업 내용도 확장의 측면에서 기존의 조각을 비롯해 미디어, 공공조형 작품 등으로 조형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예술도 하나의 생태계로 볼 때 생태적 다양성은 필연적이며, 또한 다양한 종의 탄생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종래의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하이브리드 등으로 확장되는 것이 산업계 흐름인 것처럼 예술계도 새로운 종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주류를 이루어 온 장신구나 테이블웨어 등은 디자인의 특성과 역량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3D 그래픽 및 3D 프린터 등의 보급으로 인해 종래의 수공예가 다량 생산을 위한 디자인쉽에 참여하는 것 역시도 시대의 흐름대로 가는 것이다. 주얼리나 테이블웨어, 웨어러블 등의 분야는 더욱 디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확장된 현상들 속에서 종래의 금속공예는 표현에 역점을 둔 조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문화산업 시장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디자인 범주는 여전히 금속조형의 주류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확장성에 따라 큰 영역의 연합체 같은 정체와 질서의 신종 예술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 배경에서 태동된 개념이 조형디자인(Art & Design)이라 불리게 된 것인데, 영미권에서도 비슷한 상황에서 병렬 개념으로나 혹은 대체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전통적 개념의 공예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현대사회에서는 아카데믹해진 성격으로 말미암아 학술, 박물관, 취미와 여기(餘技) 등의 범주에서 두드러진다.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부응하는 개념적 대응에 가장 주도적 역할과 백업을 맡게 된 것도 홍금회이다. 전환기의 중요한 과제가 전통공예로부터 현대미술과 산업디자인에까지, 그리고 작은 반지에서부터 한 도시의 랜드마크 모뉴먼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이 조형디자인이다. 문화의 신·구 양상들 간의 대립국면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그러한 전환기의 불안 상황을 홍금회가 극복하고 조율했다는 근거는 이렇다. 홍금회의 회원들이 대체로 사회, 문화계 오피니언 리더들로서 그들의 논리와 작업들이 교육현장에서나 문화, 산업 등의 현장에서 설득력을 확산시켰던 역할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내공을 본받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패기와 실험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는 선순환의 그룹이 바로 홍금회이다.
한국에서의 40년이란 세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까닭은 정치, 사회, 경제, 철학적으로 무수한 격변의 연속이었고, 다른 나라 같으면 1세기 이상의 세월이었을 시간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현대사와 현대예술의 아레나에서 각축을 펼쳤던 양식이나 사조들이 바로 홍금회 역사 40년에 압축되어 있다. 그동안 우리 문화가 과소평가되어왔던 것처럼 우리의 금속조형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제 우리 문화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시점에서 우리의 현대미술과 금속조형이 K-아트라는 이름의 물결을 일으킬 차례이다. 우리의 모든 산업이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오늘의 번영을 이룬 것처럼 우리의 예술도 협소한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해 있다. K-컬쳐가 세계 무대를 평정하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의 환경은 지금도 끊임없이 급변하고 있다. 다들 입을 모아 4차산업혁명의 시대라 외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바깥 환경이 금속조형계에 아직은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적 집중과 소비, 즉 향유에 바쳐져야 할 시간과 에너지 상당량이 새로운 미디어나 가상현실 등에 매몰되고 있다. 단적으로 우리 현대인들의 눈과 귀가 잠자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다. 일상의 상당 시간과 공간을 잠식해가는 오늘의 디지털 환경과 시스템들이 과연 우리의 금속조형에 얼마나 우호적일까. 그다지 금속조형 친화적으로 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인들의 눈과 귀에서 권력이 나오고 재화가 나온다. 그동안 무수한 난관을 헤쳐온 데 앞장서 온 홍금회가 이제 또 어떤 성취의 시대를 열어갈지 주목된다.